다경아,
얼마 전 한국에서 ‘공교육 멈춤의 날’이 있었다는 것을 보았어. 많은 사람이 제도 개혁에 관해 이야기하지만 난 그것과 더불어 인간성 회복에 대한 노력도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했어. 왕따 문제든 아동 학대든 폭력 사건이든 인간이 다른 인간의 삶을 끝내버리는 사건들을 볼 때마다 인간은 이해하기 어려운 존재라고 생각하게 돼. 어떻게 하면 인간이 인간에게 해를 끼치지 않고, 아니 세상 모든 생명이 서로 조화로운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하는 나날이 많았어. 모르겠더라. 내가 도저히 손 쓸 수 없는 일 같아서 무력했어. 어떤 사건이 터질 때마다 사람들은 제도를 바꾸려고 애를 쓰는데 제도를 바꿔도 어딘가에는 계속 구멍이 있는 것 같아. 나아지는 것 같지 않거든. 그러다가 신형철 문학 평론가의 인터뷰를 읽게 되었는데, ‘슬픔학’에 관한 이야기가 있더라.
“슬픔학이라는 게 슬픈 영화 틀어놓고 같이 울자, 이런 게 아닙니다.
세상에 얼마나 다양한 슬픔이 있고, 비극 앞에서 사람이 어떤 감정을 느끼고,
결핍은 사람을 어떻게 흔드는가. 이런 것들을 이해하면 판단할 때 영향을 미치지 않겠어요?
사회학과 심리학과 문학이 결합하면 충분히 교과서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럼, 왕따 문제도 많이 줄어들 거라 생각해요.”
롱블랙 인터뷰 중
참 와닿는 말이었어. 생명들이 조화로운 삶을 살려면 결국 서로의 입장에 관심을 두고 직접 겪어보지 못한 것들은 상상하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 같아.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그런 마음을 심어주고 싶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어 보이는 슬픔과 결핍, 또는 어떤 대상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신의 생존이나 이익만이 아닌 그들과의 조화를 꿈꾸며 사는 마음 말이야. 그런데, 내가 전혀 모르거나, 나와 관계가 없다고 여겨지는 것들에 관심을 두고자 하는 마음은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대학원에 다닐 때 ‘관심을 기울인다는 것 attention’에 관해 연구하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 같은 상황에 있어도 사람마다 반응하는, 혹은 관심을 보이는 현상이 미세하게 다르잖아. 같은 영화를 봐도 공감하는 인물이 다르기도 하고 같은 지역을 여행해도 하고 싶은 일이나 눈에 들어오는 풍경이 다르곤 하지. 프랑스의 철학자 베르나르 스티글러 Bernard Stiegler에 따르면 과거의 경험과 기억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미래에 대한 기대와 예측이 지금 주의를 기울이는 것에 영향을 미친대. 그렇다면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에는 관심을 가질 수 없는 것일까? 다행스럽게도 우리에게는 책, 영화, 그림, 사진 같은 것이 있지. 그런 것들을 통해서 타인의 기억과 경험, 미래에 대한 예측을 들여다보고, 세상의 다양한 슬픔과 결핍을 경험할 수 있는 것 같아. 그런 의미에서 그림책 <나는 강물처럼 말해요>는 아이들과 함께 몇 번이고 읽고 싶은 책이야. 이 책은 시인 조던 스콧의 자전적인 이야기인데, 말을 더듬는 아이가 학교에서 발표 시간을 가진 뒤 아빠와 강가를 산책하는 내용이야. 시인의 글답게 이 책에는 시적인 표현이 가득한데 그것들이 읽는 사람의 온 감각을 일깨워.
소나무의 스---가 입안에 뿌리를 내리며 혀와 뒤엉켜 버려요.
까마귀의 끄---는 목구멍 안쪽에 딱 달라붙어요.
달의 드---는 마법처럼 내 입술을 지워 버려요.
나는 그저 웅얼거릴 수밖에 없어요.
세상에 말을 더듬는 사람이 있다는 건 당연히 알고 있었지만, 나는 이 책을 읽고서야 비로소 그 사람이 말을 하려고 할 때 어떤 느낌과 마음을 가지는지 어렴풋이 알 수 있었어. 이 부분을 읽는데 마치 내 입에서 소리들이 엉겨 붙는 기분이 들었거든.
그리고 아이의 아버지가 학교에서의 일로 침울한 아이에게 ‘물거품이 일고 굽이치다가 소용돌이치고 부딪히는’ 강물처럼 말한다고 이야기했을 때, 내 입에 엉겨 붙어 있던 소리들이 부딪히다 흘러 입 밖으로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 내가 이 책을 이렇게 감각을 통해 느낄 수 있었던 건 시적인 표현들과 그것들을 아름다우면서도 효과적으로 그려낸 그림 덕분인 것 같아. 그림은 때로는 침울한 아이처럼 고요하고 때로는 강물처럼 부딪히다가 거침없이 흐르거든.
내가 이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없는 세계를 경험했듯, 아이들도 그러길 바라. 아이들도 그것을 어렴풋이 느끼고, 상상하고, 이해하길 바라. 그러다 보면 말을 더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소수의 자리에 있는 사람들, (세상의 기준에) 정상에서 벗어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하나의 존재로서 대하게 되겠지. 그 어느 범주에도 넣지 않고 각자의 모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겠지.
말을 더듬는 건 두려움이 따르는 일이지만 아름다운 일이에요.
물론 나도 가끔은 아무 걱정 없이 말하고 싶어요. 우아하게, 세련되게, 당신이 유창하다고 느끼는 그런 방식으로요.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
나는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이에요.
조던 스콧이 이 책의 끝에 쓴 글 일부야. “그러나 그건 내가 아니에요.”라고 말하며 세상이 만든 범주를 거부하고 자신의 존재를 정의하지. ‘강물처럼 말하는 사람’.
세상 모두가 이렇게 말하며 살 수 있길 바라. 그러면 혐오나 집단 간의 갈등이 조금은 사라지겠지.
다경아, 너는 어떤 사람이야?
2023.10
민영